예수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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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현상학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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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서문
002. [예수의 사계]
003. 신문의 세상을 비추는 시의 원형
004. 단풍과 낙엽
005. 어느 겨울날
006. 비 오는 일요일 오후
007. 사람을 희망하는 동물
008. 한 여인의 봄길
009. 갈 데가 어디 따로 있나?
010. 5월의 하늘이 그냥 좋아
011. 나를 없는 양 쳐 주오
012. 붉어지는 하늘
013. 관계의 밀물. 썰물
014. 소량의 마학과 후히 쓰는 예술
015. 달빛에 취해 돌아가세
016. 빛 속의 나는 새
017. 바보와 아이들의 순례
018. 자연의 엷은 미소
019. 님과 같이 청산에 산다면
020. 여름날 소라껍질을 귀에 대 보라
021. 가을날 아궁이의 불빛
022. [예수현상학]
023. 크리스마스 묵상
024. 예수현상학
025. 예루살렘의 동기호테
026. 영원의 만우절
027. 그거 내 것 아니요
028. 감각의 신학
029. 흥
030. 빈 배를 저어
031. 존재론적 음성학
032. 장승 김재준 목사님
033. 4월 유감
034. 다섯 개의 단상
035. [지성의 모험과 신앙]
036. 참다운 선교
037. 진정한 축복과 은사
038. 혹세 무민의 무리를
039. 지성의 모험과 신앙
040. 세상과 교회
041. 봄철에 일어난 두 사건
042. 교회는 미래가 있는가?
043. 미국 이민 사회의 미래
044. 경천은 참 앎의 원동력
045. 마왕
046. 장자와 노자의 향기

서평

해탈한 그리스도인의 진솔한 이야기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1. 깨달음에 이른 사람이 쓴 한국 토착적 예수전 이야기

 

「예수현상학」이라는 멋없고 딱딱한 책 제목은 분명히 잘못 붙인 실수일 것 같다. 이 책은 아시아와 한국의 문화·종교적 토양에 복음의 씨가 떨어져 꽃핀 한국 그리스도인의 예수전이다. 예수를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라고 믿는 한 구약신학자가 아시아의 위대한 혼, 노자나 장자 그리고 고다마 싯달타와 만나 이야기하면서 서구신학의 냄새와는 전혀 다른 한국적 토착신학으로서 전개한 그리스도 예수 이야기다. 또한 해탈한 그리스도인의 진솔한 예수 증언이요, 진리의 이야기다.

 

책 제목을 잘못 붙였다는 평자의 투정은 ‘현상학’이라는 어휘가 주는 낯섦과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학문적 난해성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노라면 「예수현상학」이라는 표제의 ‘현상학’은 철학적 현상학의 이론도 아니고, 훗설과 하이데거의 골치 아픈 철학 이야기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현상학이라는 책 표제는 정통교리와 신학의 포장지와 캡슐 속에 담겨지지 않은 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예수, 사심 없이 그분을 바라보고 만나는 사람에게 나타나 보인 실상 그대로의 진실한 예수 이야기라는 뜻이다.

 

대학에서는 본래 물리학을 전공한 후 신학에 정진한 곽노순 교수는 구약학으로 학위를 한 사람이요, 북미주에서 10년 이상 목회를 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섬세하면서도 깊은 통찰력, 유머 감각 및 승화된 시적 상상력을 융합하여 종교와 복음진리의 핵을 신선한 언어로써 전달해 주었다. 실로 그는 한국적 토착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해탈한 그리스도인이다. 그의 존재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진리의 깨달음이 하나로 융합됨에서 얻어진 빛으로 충만하며, 그는 이 책에서 이 빛을 통해서 환히 꿰뚫어 본 눈앞의 세계와 자연과 인생을 읊조리기에, 그의 존재의 밝음은 눈부시고 자유롭기만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신앙과 지성이 하나로 통전되고, ‘아는 일믿는 일이 하나로 포옹되면, 어떤 삶의 자유와 정열이 발생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증언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예수라는 분,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라고 고백된 분을 ‘현상학적으로 관찰’하고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혼으로 몸을 밀고 간 투혼의 사람, 위난을 초래하면서까지 사람의 가면을 벗기고 그 중심을 흔들려는 사람, 소리 없이 흐느껴 우는 사람, 구실 못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 올려주는 사람, 샘솟듯 하는 슬기와 기지로 면도날 사이를 빠져 나가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암시하는 사람, 구름떼같이 몰려오는 인간들에게서 위안거리나 만족을 얻지 않는 사람, 끝내 사실과 사사로움을 씻은 듯이 벗어난 사람, 자연생 약초처럼 배우지 않은 가운데 자라난 사람 -이런 예수를 사람이라는 규범 속에 넣기가 주저스럽게 된다.… 신앙의 길이란 그의 성품과 비밀과 힘을 실마리로 하여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보는 길이다. 이 길에 올라서고 보면 인생은 한 송이 흙이요, 예수는 한 그루 하늘인 것이다. 신앙은 이런 예수의 삶의 내용을 하늘의 술어와 행동으로 터득하는 결단과 인식을 이름한다.”(137-138쪽, 143쪽)

 

결국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지닌 분이라든지, 삼위일체 하느님의 제 2위격이라든지, 구속적 속량 위업을 달성한 분이라든지 등의 전통적 교리신학이 말하려는 그 참뜻을 전혀 다른 발상법과 자연스런 설명으로 예수라는 분의 존재가 지닌 힘과 새로움과 생명력을 증언하고 있다. 교리적 용어구사를 하나도 사용하지 아니하고서도 그 증언을 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책은 흔히 종교적 휴머니스트들이 지성인들과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게 기독교 신앙진리를 통속화하여 편안하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얄팍한 자유주의 신학자의 예수전과는 전혀 격이 다르다. 도리어 예수의 삶과 언행 속에 담긴 하늘의 높은 뜻과 진리의 소리와 생명의 광휘를 놓치지 않고 붙잡아 독자들에게 드러내 준다.

 

그는 하느님의 침묵에 뿌리를 내리고 뻗어난 말씀의 산❲生❳ 나무를 예수의 생명이라고 본다. 예수의 생명은 모든 인간 삶의 원형이요, 때 묻지 않은 ‘원’샘이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침묵과 말씀, 분노의 심판과 무량애의 사랑, 채움과 비움, 양의 원리와 음의 원리, 제사장 정신과 예언자 정신 등 모든 이원적 요소가 하나로 통전된 것임을 말한다. 저자의 놀라운 미학적 신학이 지닌 표현력과 상징의 언어 구사력과 섬세한 관찰력이 독자들의 영혼의 때를 씻고 심령을 정화시킨다.

 

 

  1. 자연의 4계절 안에서 만난 예수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는 예수의 사계(四季), 제2부는 예수현상학, 제3부는 지성의 모험과 신앙이다. 설교메시지, 신학적 수필, 미주 목회시절 신문지상에 실렸던 주옥같은 글들의 묶음이다.

 

그 중에서 예수의 사계는 자연의 4계절 변화와 거기서 펼쳐지는 온갖 생명현상의 현란한 사건 속에서 하느님의 임재와 숨결을 느끼고, 예수의 현존을 체험하는 아름다운 한국적 자연신학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여름철 푸르던 잎들이 아픔을 머금고 붉게 물드는 데서 ‘사색’을 보고, 떨어지는 낙엽의 몸짓에서 ‘기도’를 듣는다. 창공에 휘날리는 겨울의 눈송이에서 마음이 텅 비어 가벼워진 하늘의 천사를 보면서 탐심에 찌들어 몸무게가 무거워져 버린 신앙인의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기독교는 역사의식이 강하여 역사적 참여와 역사적 책임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기독교는 자연에 대해서는 불감증 환자였다. 자연을 하느님의 구원 드라마가 전개되는 임시 가설 무대장치 정도로 생각해 왔다. 눈앞에 보이는 천지만물 자연의 대파노라마가 곧 순간순간 하느님의 놀라운 기적 사건이며 산 말씀이며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둔감했다. 숲, 꽃잎, 비, 이슬, 구름, 바위, 강, 오월의 신록, 지고 뜨는 달, 남녀의 성(性), 아궁이 속의 불빛에서 저자는 영원자의 숨결과 손짓을 느끼고 말한다.

 

뉴턴의 기계론적 인과율이 패러다임으로 그려진 자연관은 그저 저기에 머물면서 개발되고 활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죽은 자연을 제시할 뿐이다. 이것은 자연의 소외요, 인간의 소외다. 소위 생태학적 위기와 원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색맹같이 죽어버린 우리의 눈을 뜨게 하여 자연을 하느님의 은총의 손짓과 말씀으로 듣게 한다.

 

저자는 바람과 햇빛과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은 아무 색깔이 없는데 이런 무색의 것들을 먹고서 어찌하여 온갖 꽃들은 현란한 색채향연으로 조화를 부리느냐고 묻는다. 우리의 몸, 살과 뼈는 결국 흙 속에 녹아 있는 무기질과 유기질의 변화인데, 우리의 살과 뼈가 흙으로 다시 분해되어 환원할 때까지 우리 생명 속에 넘치는 이 신비한 사랑의 힘과 영원의 기도를 무심하게 당연한 듯이 받아 넘기지 말라고 일깨운다.

 

20세기 최대의 자연철학자 화이트 헤드는 그의 유기체 철학사상에서 말하기를 철학이란 어찌하여 한송이 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색깔과 균형과 조화와 통일성을 지니며 나타나는 것인가를 설명해 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인들은 동식물 유전인자의 구조와 형질 속에 그 모든 것들이 자동적으로 내장되어 있다는 사이비 ‘과학지식’으로 설명이 다된 듯이 신기함과 놀라움을 잊고 살아간다. 생생한 생명의 약동 속에 펼쳐지는 새로움, 신기함, 조화의 의미, 아름다움, 억만 년 지탱하는 과거 삶의 농축 기억 등 그 모든 것들은 결코 분자생물학적 설명으로 해명이 되는 자명한 인과율의 세계가 아닌 것이다. 자연은 현대인에게 죽은 돌처럼 죽어 있는 분자의 집합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 하느님도 잃어버리고 자기 자신의 영혼도 죽어버린 것이다.

 

서평자는 이 책을 훌륭한 기독교 자연신학이라고 말하려 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자연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너무나 오랫동안 자연 속에서 하느님의 숨결과 손길을 느끼면 범신론이 되거나 내재신론이 된다는 위협으로 가위눌려 지내왔다. 그러나 성숙한 동양의 신학도는 이제 그러한 서구신학적 공갈협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윌리엄 브라이언트가 말한 대로 숲은 하느님의 최초의 성전이고, 찬송가 작가가 노래한 대로 우주자연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속삭인다.

 

 

  1. 노장(老莊)의 패러다임으로 예수생명을 이해하려는 시도

 

구약신학을 전공한 저자가 신구약 믿음의 결정체인 예수의 생명현상을 노장사상의 패러다임으로 재조명하고 있음에 우리는 놀라움과 기이한 관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본래 히브리 민족은 중동사막지방을 유랑하던 셈 종족 베두인의 혈족이고, 사막의 뜨거움만큼 그들의 신앙의 피도 뜨겁고 정열적이고 격정성과 행동주의를 골자로 한다. 삶에 대한 적극적 도전과 삶의 의지, 강인함과 성장이라는 힘의 추구, 무(無)가 아닌 유(有)의 철학발상법이 그 특징이다. 그런데 노장사상의 중요특성은 무(無), 비움❲虛❳, 고요함❲靜❳,부드럽고 유연함❲柔弱❳, 꾸밈없는 본래대로의 소탈함❲素朴❳을 추구하는 순수한 무위자연사상이 아니던가? 히브리의 구약종교가 불이라면 노장의 종교철학은 물이요, 전자가 역사라면 후자는 자연이요, 전자가 부성적 종교라면 후자는 모성적 종교요, 전자가 산봉우리라면 후자는 계곡이 아닌가?

 

어떻게 양극적 특성이 예수의 생명현상 속에서 융화되었기에 예수의 진정한 모습이 노장적 자유, 비움, 부드러움, ‘있음 그대로와 더 어울린다고 보는가? 극과 극은 서로 통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수생명의 겉은 불같이 치열한 삶이었으나 그러한 무한사랑의 폭풍적 삶을 살 수 있는 그분의 내면 영혼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여 항상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됨으로 부드러움과 고요함을 지닐 수 있었다는 것인가?

 

여하튼 저자는 지금 한국 기독교가 지닌 종교현상의 특징인 들뜨고 시끄럽고, 겉모양 과시와 양적 팽창의 자기 확장 의지, 그리고 종교를 성공의 비법기술 획득과정으로 선전하는 종교타락현상을 몹시 염려하며 정화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교회는 ‘생존하는 기술’을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예술’을 가르치며, ‘홀로 살아남는 비법과 축복’을 파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겪는 사랑’을 맛보이는 것”(266쪽)을 주임무로 해야 할 것이다.

 

흔히 ‘성령충만’, ‘은혜충만’이라는 표어를 내걸지만, 인간의 생래적 혈육인간이 정말 성령의 불과 은혜의 빛 안에서 거꾸러져 죽고 거듭난 삶이 아니고, 종교 집단적 이기심의 강화 단합대회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리적 카타르시스와 사회·경제적 생활 상승의 담보성 기대심리 때문에 제법 그럴 듯하지만 결정적 시험과 시련이 닥칠 때 모래 위에 지은 집들이다. 아니 그보다 더 이상 무너짐이 심하리라 여겨져 근심스럽다.

 

저자는 참된 축복신앙을 이렇게 말한다. “성서적인 축복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자유이며, 순수한 복음적인 은사는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깨달음과 이로써 열리기 시작하는 사랑의 신비경을 의미한다”(229-230쪽). 이 책은 진실로 종교적 탐심과 물질주의로 타락하고 속화된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맑고 신선한 청량제가 되며, 비기독교인에게는 진실한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되는 진솔한 예수이야기다. 그의 글을 읽으면 영혼이 맑아지고 굳어진 가슴이 어린아이 살처럼 부드럽게 된다. 뜻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하다.

기본 정보
제 목 예수현상학
지은이 곽노순
펴낸날 1쇄 1997년 7월 1일
판 형 신국판
분 량 290쪽
분 야 국내도서 > 종교 > 기독교 > 신앙도서> 영적성장
ISBN 89-86885-08-5
펴낸곳 도서출판 네쌍스
Category
Books
Tags
곽노순, 도서출판 네쌍스, 예수현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