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의 들향 1 샤론의 들향 2
샤론의 들향 1 샤론의 들향 2
001. 타는 촛불 되어
002. 씨앗의 아픔
003. 짙은 녹음에 누워
004. 물드는 잎새
005. 빈 하늘
006. 영원한 맥박
001. 타는 불꽃되어
002. 씨앗의 아픔
003. 짙은 녹음에 누워
004. 물드는 잎새
005. 빈하늘
006. 영원한 맥박
허태수(목사, 성암교회)
이 땅, 대부분의 기도는 가난하다.
내용은 땟국물이 흐르고 언어는 덕지덕지 기웠다.
부끄럽게도 새벽 샘에서 길어온 샘물보다 정결하지 못하니
양고기 굽는 향내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런데 「샤론의 들향」에 나오는 기도는 하나같이 잘 익은 냄새가 난다.
그 냄새가 들판에 퍼지고 하늘에 올라 샤론의 ‘들향’이 되었다.
「샤론의 들향」은 엮은이 곽노순 목사가 10여 년 동안 목회한
미국 시카고 샤론교회의 교우들이 예배시간에 올린 기도다.
150여 편의 기도문을 느껴보면,
그들은 생의 지붕에 고성능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산다.
그들은 감각의 예민한 안테나에 걸려든 우주의 운율을
현실이라는 방안에 음악처럼 흐르게 하고,
풀잎에서 이슬 떨어지는 작은 붕괴를 경의로 바꿔,
보이는 세계를 벗어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성(聖)과 속(俗)의 두 개의 다른 시간, 두 개의 다른 공간을 리듬 있게 행보하며,
깨금발로 어지럽게 사는 무리에게 한 다리로 걸을 수 없음을 깨우쳐주기도 한다.
마치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다”고 하셨던 예수의 말씀을 가락 삼아
감각의 이쪽과 혼의 저쪽을 동시에 노니는 듯하다.
이렇게 샤론교회의 교우들은 기도를 통해 긴급한 하늘의 뉴스를 듣기도 하고,
아름다운 웃음소리를 띄우기도 한다.
“기도가 오르면 말씀이 내려 천지간에 소통이 일어나 사람의 영혼이 영근다.”고
엮은이가 말했듯이, 샤론교회 교우들의 기도는 영근 혼들의 노래다.
물론 ‘거룩거룩’으로 시작하는 전래(傳來) 기도에 익숙한 교우들에게
「샤론의 들향」에 나오는 기도는 기도(祈禱)인지 시(詩)인지 헛갈린다.
한가한 사람들이 콜라나 마시며 끼적거린 낙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너절한 것에 익숙하고, 궁색한 것을 즐겼던 사람들에게
왕후(王侯)의 권세를 구하지도 않고,
황금과 몰약을 바라지 않고도 기도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샤론의 들판에는 그저 ‘잊지 않게 하옵소서’ 하는 눈빛만 반짝인다.
‘잊지 않겠다’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를 미루고 과거에 매달리겠다는 말인가?
아니다. 우주를 현재로만 느낀다는 것이다.
가을 나뭇잎에 묻은 여름 먼지를 쓸어내는 햇살의 감동이거나,
돌연한 사별의 슬픔 같은 것,
그리고 모든 사물과의 교감에서 일어나는 인상을, 의미의 그물에 가둬둠으로써
식지 않은 기쁨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기도한다는 말이다.
샤론의 들판에는 언제나 행복한 햇살이 그물처럼 퍼져 있고,
빈혈기 없는 초록의 꽃들로 가득하다.
기도는 ‘자기를 없애는 자발적 행위’라고 한다.
광야에서 40일 기도하고 돌아온 예수를 마귀가 유혹했을 때,
예수에게는 마귀가 바라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이미 기도에 도달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예수는 기도 자체다. ‘기도 자체’라는 말은 기도를 수단으로 삼을 필요가 없는,
일체와 완성에 도달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 기도문을 통해, 우리는 기도를 수단으로 썼던 어리석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느끼게 되고,
샤론의 들판을 가꾼 농부를 만나보고 싶어진다.
「샤론의 들향」은 책이 아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서 태평양을 건너온 색깔 있는 교우들의 숨결이다.
「샤론의 들향」은 짧고 덧없는 우리들 인생이
여름밤에 한 점 불빛으로 빛나는 존재로 탈바꿈시킬
비술(秘術)을 터득케 하는 할(割)이다.
*할(割): 선가(禪家)에서 사견(邪見)을 꾸짖어 깨닫게 하는 큰 소리.
한종호 목사
「예수현상학」과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낙타」「신의 정원」을 통해 한국 교계에 풋나물과도 같은 상큼한 사상과 푸른 산봉우리와도 같은 영성의 모습을 소개해준 저자 곽노순 목사가 이번엔 기도모음집 「샤론의 들향」을 내놓았다.
이 책은 평교인들과 목회자가 번갈아 강단에서 드린 실제의 기도들로써, 감히 존재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가련하고 하잘 것 없는 이들의 진솔함과, 당신을 그려보고 싶건만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으면서도 세풍에 아랑곳없이 올곧게 외길을 걷고자 하는 정진함이 들꽃처럼 번져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기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이들일까 하고 만나보고 싶은 충동마저 일으킨다.
여기에 모아 놓은 기도들은
수년 간 시카고의 한 작은 제단에서
하느님께 바쳐진 혼 소리들입니다.
현대적 삶을 살아가는 정황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남달리 목말라 하는 정황에서
피어오른 정직한 목소리들입니다.
신실을 찾으시는 하늘의 은총에 화답하여,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샤론의 공동체가
복의 겨움을 한 때나마 체험했던 산 기록들입니다.
동일한 은혜가 함께 읽어가는 이들의 영혼 속에
피어나리라 믿습니다. (책머리에)
주님,
크고 작음도, 더함도 덜함도 없이
한포기 생명의 꽃처럼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저 빈 마음으로 큰 호흡을 하며
세상의 파도를 넘어갈 때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사랑의 줄이
큰 인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영애)
몸을 입은 자들이 새해 벽두에 당신 전에 와 서 있습니다.
저희가 모르는 까닭으로 저희에게 생명을 주시고
저희가 모르는 까닭으로 저희에게 세월을 주시고
저희가 모르는 까닭으로 저희에게 교회를 주신 하느님,
우리의 부산한 사지를 멈추어 세우셔서
주님의 미동을 느끼게 하시고
우리의 번잡한 가슴을 잔잔케 하시어서
당신의 따사로운 손길을 알게 하시고
우리의 소란한 머리를 고요케 하시어서
당신의 깊은 침묵을 느끼게 하옵소서.
또 다른 새해 문턱에 저희를 세우신 주님,
몸과 마음과 혼으로써 새 나날을 헤치고 나아갈 때
저희를 대나무처럼 비워 당신 입술에 갖다 댄 피리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불러주시는 노래에 우리도 이웃도 취하여
춤추게 하시옵소서 (곽노순)
헤아릴 수조차 없는 사랑의 하느님,
차갑게 느껴오는 촉감에 생기를 얻고
눈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깊은 숨을 쉬면 나도 파랗게 되어 하나 될 것 같은
무한함이 거기 있었습니다. (최송자)
아브라함이 소돔 사람들의 운명에 대하여 하느님과 감히 말하고자 할 때 고(告)했던 “먼지와 잿더미 같은 제가 감히 당신께 말하려 하나이다.”(창세기 18:27)라는, 무(無) 속으로 함몰되고 사라져 버리는 감정인 듯하면서도 하늘을 향한 혼의 뜨거움이 배어있다.